얼마 전 한국에 잠깐 들어갔을 때 '포카칩'을 먹다가 매우 놀랐습니다.
'원래 포카칩이 이렇게 맛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금방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포카칩을 디스할 게 아니라 미국에 살면서 바뀌어버린 제 입맛을 탓해야 했던 거죠.
간혹 미국에 놀러오시는 분이나 미국에 살지만 한국에서 오래 사셨던 분들의 경우 미국 음식이 너무 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연세드신 부모님이 이민 온 지 십수 년이 지나도 불평하신다던..)
저도 미국에서 먹었던 음식이나 과자 중에 한국에서는 상상치 못했을 정도로 짠 것들을 먹어봤더랬죠.
특히 과자는 정말 짠 게 많습니다.
감자칩 종류는 물론이고, 단 과자가 아니라면 무척이나 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짠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미국 음식의 염도가 좀 중독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해서... 짠 음식에 금방 익숙해지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 덜 짜고 조금 더 두꺼운 포카칩이 싱겁고 딱딱하게 느껴졌던 거지요.
그래서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정말 미국 음식에는 소금이 많이 들었고, 미국인들은 우리나라보다 염분을 많이 섭취하는 걸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구글링을 살짝 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래 지도는 2013년에 BMJ Open란 곳에서 발표된 자료의 내용입니다.
2010년 기준 20세 이상 성인의 일별 소듐(나트륨), 소금 섭취량 추정치입니다.
미국이 의외로 연한 초록색인 게 보이시나요?
반면 한국은 상당히 진한 주황색입니다. (일본과 비슷해 보이네요)
물론 해당 내용은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이고, 추정치일 뿐이니 이것만 보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찾아봤습니다.
미국 CDC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 소듐(나트륨) 섭취량은 3400mg 정도라고 합니다.
소금 양으로 치면 9g이 조금 안 되겠네요.
한국의 경우 발표치가 왔다 갔다 하는데,
2015년 국민건강조사 결과는 인당 평균 소금 섭취량 9.8g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2020년 보건복지부 발표자료에는 2018년 기준 소듐(나트륨) 섭취량이 약 3255mg 정도라고 나옵니다.
2015년을 보면 한국이 더 많고, 2018년을 보면 미국이 더 많네요 ㅎㅎ
아무래도 정확한 측정이 이뤄지기 어려운 데다가 나라마다 측정법도 조금 다르니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참고로 WHO의 소듐 섭취 권장량은 2.3g입니다. (티스푼 정도라네요 ㅎㅎ)
어쨌든 위의 자료들을 살펴봤을 때 결코 미국인이 한국인보다 소금 혹은 소듐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슷한 수준인 거죠.
그럼 왜 여전히 우리의 입맛은 미국 음식을 짜다고 느끼는 걸까요?
여기서부터는 저의 뇌피셜이 좀 섞인 분석입니다.
1. 미국 음식은 맛이 단조롭다.
우선 미국 음식 혹은 과자는 대략 세가지 맛입니다.
단맛, 짠맛, 신맛.
요즘은 미국에서도 매운맛 음식/과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긴 한데 매운맛은 일단 '맛'이 아닌 데다가 짠맛이나 신맛과 함께 담기는 경우가 많으니 제외하겠습니다.
이렇게 단조로운 맛을 극단적으로 담아내는 게 미국 음식입니다.
단/짠/신을 조화롭게 섞기보단 단맛 90% 짠맛 10%나 짠맛 80% 신맛 20% 막 이런식으로 편중되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음식을 생각해보면 레시피에 따라 다르지만, 소금+설탕 혹은 간장+설탕 혹은 간장+액젓+설탕의 1:1 혹은 2:1 조합이 많습니다.
하다못해 된장, 고추장도 섞어서 쓰죠. (대체로 고추장이 좀 달죠)
이렇게 맛의 조화를 이루면 소금이 많이 들어가도 "짜다"라는 감각은 적게 느낍니다.
실제로 찌개를 끓이다가 실수로 소금을 좀 많이 넣게 되면 설탕을 살짝 넣어서 보완해주기도 하니까요.
결국 미국 음식은 소금이 들어가는 양에 비해 (달리 보완해줄 맛이 없으므로) 짜게 느껴집니다.
조화로운 맛에 익숙한 한국 사람은 단번에 익숙해지긴 어려운 측면이 있죠.
특히 한국 사람이 미국 음식을 접할 곳은 레스토랑뿐이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레스토랑은 원래 간을 세게 하니까 더욱 그런 측면이 강조되겠죠.
반면 한국인은 국물 때문에 사실 소금 섭취를 많이 한다는 말이 있죠.
'희석'된 국물을 한 숟가락 먹을 때는 짜게 느끼지 못하지만, 다 마시고 나면 상당한 양의 소금을 먹게 되니까요.
앞서 말한대로 한식이 워낙 맛의 조화가 잘 이뤄져 있다 보니 짠 줄도 모르고 먹다가 물 멕히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위에 나온 조사 데이터(실제 소금 섭취량은 두 나라가 비슷하다는)가 나름 맞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2. 미국 음식은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는다.
앞선 얘기의 연장선상입니다.
우리나라 음식은 마늘을 비롯해서 다양한 향신료를 쓰죠.
반면 미국 음식은 후추가 다 입니다.
더군다나 미국 음식은 지방성분이 많은데 말이죠. (튀김, 고기 등등)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금을 많이 쓰고, 그 맛이 더욱 강조되게 됩니다.
3. 미국 음식은 오랜 기간 보관에 용이하도록 만들어진다.
우선 미국인은 가공식품을 무척 많이 먹습니다.
이미 가공되어 나온 재료를 이용하는 요리도 많죠.
그건 식재료를 한 번에 왕창 사는 미국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이란 나라 자체의 크기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냉장기술이 발달해서 좀 덜하겠지만, 여전히 식품을 운반할 때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미국처럼 넓은 나라에서 운반하다가 음식이 상하기라도 하면 난감하겠죠.
그러니 미리 소금 간을 해서 식품의 보존기한을 늘리는 게 관습이 되었을 겁니다.
미국 마트에서 파는 식품 중에 도저히 상온 보관이 안 될 것 같은데 상온 보관인 제품은 대부분 무척 짜더군요.
뭐가 됐든 미국 음식이 짜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여행하면서 단숨에 입맛이 변할 리도 없고..
'입맛은 짜지만 소금 섭취량은 똑같아' 하고 스스로를 설득할 순 없잖아요? ㅎㅎ
그러니 미국 식당에서 너무 짜서 먹기가 어렵다고 느끼시는 경우는 주문할 때 미리 'less salt' 혹은 'less sodium' 옵션은 없는지, 덜 짜게 만들어줄 수는 없는지 확인해보시면 좋습니다.
미국은 음식 커스터마이징이 잘 되는 문화라서 가능한 경우가 많을 겁니다. (다만 레시피 특성상 애초에 짠 재료가 들어가는 경우는 어쩔 수 없겠죠)
아니면 메뉴 중에 덜 짠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좋습니다.
그나저나 왜 한국은 소듐(Sodium)이 아니라 아직도 나트륨이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나트륨은 과학에서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인데 말이죠.
단순히 관습이라고 하기에는 과학적 소통을 위한 단어이니 세계적인 표준에 맞게 바꾸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일본과 한국만 나트륨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섬나라처럼 고립되지 말고 최신 용어로 바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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