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의 열매

하버드 대학교의 친일 논란?

by 삼쓰남 2022. 9. 18.
반응형

얼마 전에 흥미로운 뉴스를 접해서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JgmACYhJSM 

 

JTBC에서 나온 뉴스인데 뉴스의 타이틀은 '친일 입김 먹히나 한국 필진 없는 필수 교재'였습니다.

 

요지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Harvard business school - 이하 HBS)에서 사용되는 필수 교재에 한국 역사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필진 중에 한국인이 없으며 일제 강점기와 관련되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내용입니다.

언뜻 보면 친일파의 입김이 하버드대에 만연하구나! (하버드 법대의 램지어 교수를 포함해서) 하는 생각이 드는 기사지만 사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HBS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해당 뉴스에 대해 몇 가지 정정할 내용과 사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HBS에서 사용되는 교재는 Case라고 불립니다. 이에 아래부터는 케이스라고 명칭 하겠습니다.

 

 

  • 해당 교재(케이스)는 완전한 필수가 아니다.

기사에서는 해당 케이스가 매년 모든 하버드 경영대학원생이 공부해야 하는 교재처럼 언급되었습니다만, 이는 아주 정확한 설명은 아닙니다.

먼저 HBS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군요. HBS에 입학한 모든 학생은 첫 1년 동안 동일한 과목에서 동일한 케이스로 수업을 하게 됩니다. (보통 1학년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다른 MBA 학교들과 조금 다르죠.) 그래서 1학년을 RC (required curriculum) year라고 부릅니다. 반면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2학년은 EC (elective curriculum) year라고 부르죠.

그런데 HBS의 과목들은 그 하위에 매우 많은 케이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과목의 수업이 열 번이더라도 보유한 케이스는 그의 몇 배가 넘죠. 특히, 오랜 역사를 가진 1학년 과목들은 케이스 숫자가 수업 횟수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죠.

그러다 보니 매년 교수들의 회의를 통해 해당 과목에 사용할 케이스를 선정합니다. 다시 말해 매년 과목의 교육 목표는 같지만 사용되는 케이스는 변경되는 겁니다. (물론 워낙 중요하고 유명해서 매년 사용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이번에 뉴스에서 논란을 삼은 한국 케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수업 (BGIE라는 수업입니다.)에서 매년 한국 케이스를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저도 1학년에는 해당 케이스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제 다음 학년에 사용되는 걸 보고 한편으로는 아쉽다고 생각했었지요.

물론 해당 케이스가 사용되는 해에는 대략 900-1000명 정도 되는 HBS 학생이 모두 해당 케이스를 읽고 토론하게 되는 것은 맞습니다. 필수이긴 하지만 매년 필수는 아닌... 조금 애매한 내용입니다.

 

  • HBS의 수업은 주입식이 아니다.

다른 하버드 대학교나 대학원을 다닌 것은 아니라 HBS를 기준으로만 설명하겠습니다만, 미국의 수업 방식은 주입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HBS는 그 유명한, 지금은 모든 MBA 학교들이 사용하는 Case Study(케이스 스터디)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학교죠. 

나중에 다른 포스팅에서 또 설명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케이스 스터디는 사전에 비즈니스 케이스를 읽고 학생들이 토론하는 수업입니다. 여기서 흥미롭고, 또 중요한 점은 수업의 교수는 토론을 진행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겁니다.

다른 분야나 한국의 교수님들처럼 교재에 적힌 내용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는 거죠.

그럼 토론에서 중요한 건 뭘까요? 바로 비판적인 읽기와 논리적인 의견 개진, 그리고 상대의 의견 경청이겠죠.

먼저 비판적인 읽기입니다. HBS에서 주어지는 케이스는 정답이 적힌 교재가 아닙니다. 현상을 설명하고 문제/의문을 제기하는, 토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도구입니다.

때문에 HBS 학생들은 케이스를 읽을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행간을 읽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도록 권장됩니다. 물론 논란이 된 한국 케이스의 경우는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한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마냥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긴 하겠죠.

둘째는 논리적인 의견 개진입니다. HBS의 교실에는 대략 90여 명의 학생이 앉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뛰어난 학생들과 교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인사이트가 담긴 의견을 내도록 압박을 받게 되죠.

특히, 다른 나라의 역사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혹은 가볍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수업에 집중하게 되고, 케이스를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고, 필요하다면 별도의 연구를 해서 수업에 임하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상대의 의견 경청입니다. 토론은 상대의 의견을 잘 이해하고 이에 대해 반론하거나, 추가 질문을 통해서 더 많은 인사이트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나의 생각을 바꾸거나, 몰랐던 부분을 깨닫거나, 케이스에 담기지 않은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진정한 케이스 스터디의 목적이죠.

결론적으로 HBS의 수업은 케이스에 적힌 내용을 고지 곧대로 받아들이는 수업이 아니라, 이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또, 자신보다 배경지식이 더 많은 학생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케이스 내용을 벗어난, 더욱 중요한 진실을 깨닫게 되는 수업 방식입니다.

 

  • HBS에는 한국에 대한 전문가가 있다.

한국에 대한 전문가는 누구일까요? 바로 한국인이나 한국계 학생이죠. 

HBS에는 매년 한국 국적 학생이 10명에서 15명 정도 입학합니다. 이민 2세, 3세 등 한국계 학생을 포함하면 20-30명 정도가 입학하죠.

반마다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HBS기 때문에 저 10-15명의 한국 학생은 흩어져서 배치됩니다. 즉, 반마다 (섹션이라고 표현합니다) 한 명 혹은 두 명 정도의 한국인/한국계 학생이 앉아 있는 거죠.

사람마다 다르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한국 학생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특히, 한국 역사, 경제를 다루는 한국 케이스의 경우는 더욱더 많은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 케이스가 부족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한국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여 진짜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다른 학생들이 어떤 점을 깨달아야 하는지 전달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겁니다. (토론 방식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죠)

그럼 외국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당연하게도 케이스에 적혀 있는 내용보다 한국 학생이 알려주는 진짜 한국의 이야기를 더욱 새겨듣고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케이스 스터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HBS 출신이다 보니 HBS를 옹호하는 듯한 내용이 적혔습니다만... 사실 해당 케이스가 문제인 것은 맞습니다. 저도 해당 케이스를 구해서 읽어봤거든요. (예전에 읽은 거라 정확히 내용이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일단 필진에 한국인이 없습니다. 이건 뉴스에서도 지적한 내용인데 미국인 교수와 일본인, 중국인 연구진이 참여한 케이스입니다. 한국에 대한 내용을 쓰면서 한국인이 없다는 건 기가 막힌 노릇이죠.

내용은 대체로 팩트 기반이지만,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삼국시대나 그 이전의 역사는 전혀 다루지 않은 점이 그랬고요. (최소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오천 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언급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제 강점기 등을 다룰 때도 한국이 겪은 고통보다는 경제/역사적인 효과에만 집중한 편이죠. 

이러한 부분이 오히려 토론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경제적인 효과를 보고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 하는 토론 주제를 제시할 수 있죠) 그럼에도 이런 케이스를 쓸 때는 좀 더 한국인이, 한국에 살았던 '인간'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게 과연 몇 줄의 '팩트'와 수치로만 넘어가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점을 한국 학생들이 항의해보기도 하고, 다른 나라 학생들도 항의하긴 했습니다만.. 쉽게 바뀌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또 이런 부분은 비단 해당 한국 케이스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HBS에 있는 많은 케이스 중에 개도국이나 약소국에 관련된 (꼭 나라 내용이 아니고, 비즈니스에 관한 내용이라도) 케이스는 서양의 시각에서 다뤄진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의 위상, 경제적 성장도, 그리고 그 나라가 외국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느낌이죠.

 

반면 중국과 일본은 다릅니다.

일단 일본은 워낙 오래전부터 미국 정치, 경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기업 운영과 관련해서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미국인들도 일본에 관심이 많고 '친일'까진 아니더라도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죠. 거기에 지금도 하버드 등 유수한 대학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본인들의 사상이 널리 퍼지도록 노력하고 있죠. (램지어 교수도 일본으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고 있다고 하죠)

중국은 한술 더 뜹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는 '공자학원'을 곳곳에 세워서 중국의 사상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 때문에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중국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인들이 넘쳐나죠. (HBS 선택 과목 중에는 중국 경제/기업에 대해서만 배우는 과목도 있을 정도죠.) 당연히 중국 정부에서 엄청난 자금을 써서 그런 지식인들과 학교를 후원하고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대정부 차원에서 노력이 딱히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과는 참 다른 느낌입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만 지지고 볶기에도 바빠서 그런 걸까요..

 

말이 길었습니다만, 이번 논란이 그냥 논란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야, 하버드! 너희가 그러고도 세계 최고 대학이냐? 진실을 외면하지 마라! 똑바로 가르쳐라!" 이렇게 말하면서 하버드를 비난하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강대국입니다. K-컬처의 영향으로 국격도 많이 높아졌고요. 그에 반해서 한국의 역사를 알리고 경제의 가능성과 위대함을 알리려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은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냥 알아서 되겠거니 하는 느낌이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일본과 중국은 국가와 기업이 뭉쳐서 엄청나게 로비를 하고 자신의 나라가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이건 잘잘못을 떠나 경쟁인 겁니다. 우리나라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으로 뭔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투자를 게을리하고 손 놓고 있으면 수년 후에는 다시 중국과 일본에 밀려날 겁니다.

저는 왜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정부가, 삼성/엘지/현대 등 엄청난 세계적인 기업을 가진 나라가 중국, 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약소국처럼 행동하는지 이해 못 하겠습니다. 강대국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 발전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미래 계획을 세우고 과감한 투자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하버드, 그리고 유수의 세계 대학들이 시키지 않아도 한국의 장점을 배우려고 하고 칭송하는 날이 도래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