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넷플릭스 신작 카터를 (힘겹게) 관람했다.
먼저 여러분의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
제발 보지 마라. 인생이 너무나 무료하고 할 일이 하나도 없고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이 한가한 시간이 나도 보지 마라. 배우 주원의 팬이라서 그의 노력이 보고 싶다면 더욱 보지 마라. 혹시라도 B급 영화 감성을 기대한다고 해도 말리겠다.
반대로 어떻게 하면 영화가 재미없고 망할 수 있는가를 공부하고 싶다면 봐라. 아니면 넷플릭스가 어떻게 여러분의 구독료를 하늘로 쏘아올려 불태우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봐라.
오징어 게임 이후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한국 영화/드라마들의 퀄리티가 점점 떨어지는 모습이라 걱정이 컸다. 넷플릭스 공무원 박해수가 출연한 야차나 종이의 집 모두 처참한 평가를 받았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도 단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번 '카터'는 다를 거라 기대했다.
주원의 연기 변신, 한국에선 흔치 않은 본격 액션 영화, 관련 장르 연출 경험이 풍부한 감독, 그리고 무엇보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화려한 액션을 종합해봤을 때 이건 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영화 감상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약간 갸웃거리게 만드는 촬영과 연출이 이어지고.
첫 번째 목욕탕 액션이 나오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망작의 스멜에 코가 마비되고 손이 벌벌 떨리는 기분이었다.
와씨.. 시작부터 이러기냐, 넷플릭스...
당장 끄고 싶은 걸 참고 봤지만, 개연성은 개나 주고 갈수록 산으로 가는 이야기와 끝없이 반복되는 동일한 액션. 의미 없이 나왔다 들어가는 캐릭터들. 무리한 롱테이크 구성. 정신없는 카메라 워크. 질질 늘어지는 편집.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카터 감상평을 블로그에 올려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감상을 포기했을 터였다.
밑으로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긴한데... 어차피 내용이랄 게 없는 영화니까 문제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서 내가 느낀바를 한 문장으로 쓰자면 이렇다.
감독이 하고 싶은데로 하게 뒀는데 감독이 무능할 때 생기는 총체적 난국.
이 영화에서 감독이 이루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시선으로 롱테이크를 찍고 싶다는 것.
영화 흐름 상 불가능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일인칭 시점(영화 '하드코어 헨리'가 떠오르는 장면도 많다)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장면에서도 무리하게 주인공의 시점을 채택하기도 한다. (중반부의 스나이퍼 라이플 장면)
그리고 편집점이 없이 거의 다 한 번에 촬영하는 롱테이크다.
실제 롱테이크로 찍지 않은 장면도 (어색하게) 이어 붙여서 롱테이크처럼 만들었다.
정말 기괴한 실험적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롱테이크는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정말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는 촬영기법이다.
대표적인 예로 올드보이의 격투신이나 맨오브칠드런의 마지막 탈출 장면 등이 있다.
그럼 왜 모든 영화가 롱테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걸까?
먼저 촬영이 어렵다. 드라마 영화도 아니고 다수의 배우가 나오고 상황이 바뀌는 액션 영화에서 롱테이크를 찍는 것은 엄청난 테크닉과 투자,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로 호흡이 길어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롱테이크 촬영은 중간중간 배우의 모든 동선을 편집없이 보여주게 된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열 걸음 떨어져 있는 악당을 때리는 장면에 그 열 걸음을 모두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거다.
그게 영화적 의미를 담고 있거나, 심미적으로 완성도가 높거나, 영화 한두 장면 정도에 쓰여서 임팩트를 주는데 활용될 수는 있겠지만 남용되면 영화가 루즈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카터는 이런 롱테이크 기법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배우 간의 대사처리도 다 이런 식이다.
가뜩이나 배경과 떡밥을 설명하려고 대사가 긴 장면이 많은데 그 대화를 편집으로 빠르게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카메라를 빙빙 돌리며 중간의 공백까지 다 보여준다. (정말 카메라를 배우들 주변으로 계속 360도 돌린다)
어지럽고 정신없는데 지루하다.
인물들이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뻔히 보이는데도 끊지않고 롱테이크로 돌리고만 있으니 도대체 이 장면은 언제 끝나는 건가 싶은 순간이 넘쳐난다.
이걸 더욱 악화시키는 건 개연성의 상실이다.
스토리는 액션 영화니까...라고 백번양보하겠다. 바이러스, CIA, 남북관계, 좀비, 기억상실, 배신, 가족애 등등 유행하는 요소는 다 넣었으니까 이야기에 개연성이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가 더 안타깝게 생각한 개연성의 부재는 바로 액션에 있다.
액션에도 개연성이 필요하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했던 '원티드'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그 영화에서는 총알이 휘어져 나간다. 무슨 유도 미사일도 아니고 좌우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영화 '활'에서도 화살이 나무를 피해 뒤에 있는 과녁을 맞힌다.
그럼 이런 물리법칙 따윈 개나 준 액션이 개연성이 있나?
나의 대답은 있다! 는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이런 기묘한 현상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다. 저런 환상의(여러 의미로) 기술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부각한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냐. 주인공이니까 되는 거지. 하면서)
그렇게 일종의 판타지 속으로 관객을 천천히 끌어들여서 관객이 그 물리적 불가함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그래, 충분히 가능하지'하며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영화의, 액션의 개연성이다.
개연성은 정말 앞뒤 하나도 틀리지 않고 논리와 세상 물리법칙과 맞아떨어져서 생기는 게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럴듯하네라고 생각하면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도대체 A와 B가 왜 싸우는지, 주인공은 왜 그리 강한 건지 '그럴듯하네'하며 납득이 되어야 개연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런데 카터는 그런 액션의 개연성이 없다.
액션의 시작점이 되는 목욕탕신부터가 그렇다.
분명 한 나체의 여자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약에 취한 듯한 모습으로 총을 들고 나오는데 정작 칼부림 액션이 시작되자 자취를 감춘다.
그러더니 주원이 엄청난 수의 악당을 죽이고 도망치자 여자가 다시 나타나서 총을 쏴서 자기편을 죽인다. (네?)
칼부림이 일어나게 되는 상황도 황당한 데다 의미 없는 의문만 자아내는 연출인 것이다.
또 처음 주원이 깨어났을 때 영어로 '유어 네임 이즈 카터' 이러던 전화 속 여자가 목욕탕을 나오자마자 한국말을 한다. (네?? 그럴 거면 처음엔 왜 영어로 했어요???)
'네가 스스로 기억을 지우라고 한 거야'라는 여자의 설명에 주원은 왜냐고 묻지 않는다. (응? 기억을 잃은 게 화는 나지만 궁금하진 않은 거야??)
CIA는 주원을 사로잡은 후 목표를 확보했으니 그냥 주원을 죽이거나 다른 곳으로 데려가거나, 최소한 목표부터 옮기면 되는 상황에서 쓸데없이 카메라를 빙빙 돌려가며 있는 설명 없는 설명 다 하고, '오오 이 녀석 활용도가 있겠군' 이런 의미 없는 소리를 하다가 요원들 폭발로 죽고 목표까지 뺏긴다. (그 와중에 루크 케이지 배우 마이크 콜터의 등장은 반갑지만)
서로 뺏으려고 안달이 나 있는 소녀 하나는 분명 생포해야 할 것 같은데, 하나가 있는 방향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총질을 한다. (그것도 미국 CIA가 한국 땅에서)
건물 2-3층 높이에서 떨어진 후 괜찮냐고 물어보는 주원의 물음에 우리의 소녀 하나 양은 '네, 괜찮아요'라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네???)
카체이싱 액션에선 무슨 자율주행도 아니고 운전자는 나오지도 않고 아무도 운전자를 공격해서 차를 멈출 생각은 안 한다. (이 영화의 모든 탈 것은 자율주행이다. 차든 헬기든 기차든 뭐든 온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지고 폭발이 일어나는데 누구 하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극의 최후반이 되어서야 '바퀴를 쏴'라는 소리를 하는데 그나마도 말만 하고 쏘는 모습은 안 나온다.)
나중엔 좀비가 공중으로 솟구치고, 주원은 무슨 자석이라도 달린 듯 어디든 달라붙어서 목숨을 건지고, 그다지 빨리 달리지도 않는 화물열차 외벽에 수평으로 매달리고 (아니 성인 남성이 수평으로 매달리는 속도는 KTX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닌가) 등등 모든 물리법칙을 아무런 설명 없이 무시한다.
더군다나 좀비(정확히는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어떤 경로로 감염되는 건지도 불명확하다. (그래서 좀비가 나오는 장면에서 긴장감이 1도 조성되지 않는다.) 남들이 아무리 총을 쏴도, 심지어 불이 붙어도 안 죽는 좀비들은 주원이 대충 총 쏘면 다 죽는다.
이렇게 액션에 아무런 개연성이 없으니 영화의 대부분인 액션 장면이 지루하고 실소만 난다.
또한 액션이 무척이나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모든 악당이 칼(단검)을 휘두른다. 야쿠자부터 CIA까지 모두 칼을 휘두르다가 주원한테 뺏겨서 죽는다.
총 좀 쏘다가 불리해지면 칼을 꺼내고 뺏겨서 죽는다. 장소만 바뀔 뿐 똑같이 반복된다.
총칼 액션의 동작도 어디선가 본 듯한 것뿐이다.
편집이라도 잘하면 좋은데 전부 롱테이크로 찍어서 비슷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클로즈업해서 박진감을 보여줄 부분은 멀리서 찍고, 좀 멀리서 전체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은 장면은 기가 막히게 클로즈업으로 처리한다.
정말 눈 뜨고 영화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망작의 특징 중 또 하나는 연기가 별로라는 것이다.
이건 배우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의 연출/디렉션 문제라고 생각된다.
주원은 애초에 그 좋은 연기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없는 캐릭터를 두고 분발하긴 했다. 그러나 억지로 내는 걸걸한 목소리가 어색하고. 11살에 미국 이민을 간 CIA 요원 출신이라기에는 영어가 어색하다. (발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발음과 말의 유창함은 다른 것이니까)
다른 유명한 조연 배우들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겉돌고, 왜 나오는지 알 수 없이 소모된다. (정재영 배우와 정해균 배우를 이렇게 소모하다니...)
악역으로 나오는 이성재 배우는 최악이었다. 도무지 어디 사투리인지 알 수 없는 말투와 판에 박힌 나쁜 북한 군인 연기까지 필모에 남을만한 흑역사가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아역 배우는 초반 등장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중반 이후는 무슨 짐짝처럼 취급되면서 목숨을 건 모험을 겪으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마 이 영화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스타일의 액션 영화였으니 개연성 좀 없어도 괜찮다고.
근데 우리나라 영화 산업의 입지가 '첫 시도치곤 괜찮지 않나?' 할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는 응원받아야 마땅하지만, 모든 시도와 도전이 세상에 결과물로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시스템이 발전되었고, 관객의 눈높이도 높아진 요즘 이렇게까지 실패가 뻔한 영화였다면 애초 시나리오 단계부터 재검토를 했어야 했다.
딱 OCN에서 새벽 4시쯤에 나올 법한 B급 영화를 만들 거였으면 굳이 이런 대배우들 섭외하지 말고 작은 영화로 진행했어야 했다.
과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실패가 한국 영화계에 끼친 악영향을 생각하면 많은 투자를 하여 이런 망작을 양산하는 건 지양해야 하는 일이다. (투자자를 잃는 것은 산업 생태계에 지대한 악영향을 주니까)
아무튼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배우와 스태프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남기며 긴 불평글을 마치겠다.
카터 한줄평: 감독이 하고 싶은데로 하게 뒀는데 감독이 무능할 때 생기는 총체적 난국.
별점: ★☆☆☆☆ (고생한 배우와 스태프들을 위한 1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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