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을 보고 왔습니다.

캡콤의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고요. 이 '바이오 하자드'의 영어명이 레지던트 이블이고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이번 영화의 제목도 그대로 갔습니다.
아마 여러분께서는 과거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한 '레지던트 이블' 영화 시리즈가 더 익숙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작과는 매우 다른 이야기지만 그 영화도 액션만큼은 나름대로 재미를 주었죠. (물론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완전 산으로 가버렸지만..)

이번 영화는 과거의 영화 시리즈와 무관한 일종의 리부트 작품입니다.
감독은 [웨폰]을 만든 잭 크레거입니다.
저는 웨폰이란 영화를 매우 인상 깊게 봤었는데요. 오컬트 공포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로 표현해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레지던트 이블 영화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죠.
더욱이 미국 내에서 평가도 엄청나게 좋습니다.

물론 흥행도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저예산 영화인데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등을 거머쥐었으니 손익분기점은 이번 주면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리뷰에 앞서서 전체적인 감상을 말씀드리자면요. 일단 재밌었습니다.
특히 초반부의 긴장감과 재미는 상당했습니다.
흔한 좀비물이 아니라 크리처물에 가까운 점도 좋았고요. 호러 영화치고는 스펙터클한 장면도 펼쳐집니다.
의외로 유머러스한 지점도 많아서 강약 조절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모든 유머가 재밌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다만 1시간 반짜리 영화이고 엄청난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라서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뭔가 좀더 보여줬으면 하는, 좀더 신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랄까요.
감독의 전작을 워낙 재밌게 봐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솔직히 이 영화가 로튼 지수를 저렇게 높게 받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분명 게임 원작 영화로서, 과거 혹평을 받아오던 영화 시리즈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면이 훌륭하긴 하지만,
공포/액션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완벽한 수준까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엔 좋지만, 로튼 지수를 보고 대단한 명작을 기대하면 실망할 만한 영화였다고 생각됩니다.
마치 재밌지만 너무나 짧은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랄까요. 재밌지만, 좀 감질나는, 이게 다인가 싶은.. 분명 호불호가 있을 법한 영화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스포일러를 포함해서 리뷰를 해보겠습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의료 물품 배송기사인 (이식용 장기 등을 배송하는) 브라이언이 의문의 가방을 라쿤 시티로 배달하는 의뢰를 맡게 됩니다.
원작을 아시는 분이라면 익숙한 '라쿤 시티'는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진원지죠.
전형적인 루저인 브라이언은 기묘한 사건들을 겪으며 꾸역꾸역 목적지인 라쿤 시티 종합병원으로 향해 갑니다.
그리고 내용은 이게 답니다.
등장인물도 매우 적고 사실상 주인공의 원맨쇼에 가깝습니다.
7천5백만 불밖에 안 들인(?) 저예산 영화라서 그런지 조연들은 정말 짧게 짧게만 등장하고 맙니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요.
주연인 오스틴 에이브람스의 연기가 뛰어났습니다.

전작인 웨폰에서 마약 중독자를 실감나게 연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평범하고 찌질한 사람이지만, 묘한 책임감으로 어떻게든 살아남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습니다.
근데 너무 훌륭하게 소화한 바람에...
좀 답답한 느낌까지 든달까요 ㅎㅎ
이 브라이언이란 캐릭터는 액션/호러 영화의 주인공치고는 정말 찌질합니다. 총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고 신체능력도 꽝입니다.
겁도 많고 여자친구와의 어려운 대화는 회피해 버리는 전형적인 루저 캐릭터죠.
다른 호러 영화였다면 주인공의 친구 중에서 겁먹고 도망치다가 가장 먼저 죽는 캐릭터였을 겁니다.
이런 타입의 무능력한 주인공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영화 내내 고구마를 먹는 기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캐릭터이기에 중간중간 실소가 터지는 코믹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또한 주인공이 무능력하니까 괴물들의 공포스러움이 조금 더 강조되는 부분도 있죠.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아주 조금이나마 주인공다워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 외의 조연들은 정말 짧게, 그리고 생각보다 코믹한 방식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이런 활용이 나쁘지는 않은데 조금 더 길게 서사를 끌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호러 영화치고는 코믹한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엄청 웃기다기보다는 실소가 터지는, 큭큭하고 웃게 되는 편인데요.
감독의 유머 감각이 약간 시니컬하면서도 B급 감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점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네요.
호러 영화로서 가장 중요한 '공포'의 느낌은 좋았습니다.
특히 전반부의 눈밭과 외딴 집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느꼈습니다.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다가도 유머가 터지고, 또다시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흐름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영화였지만,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워낙 주인공 vs 크리처(들)의 단순한 구도였기에 공포심이 점점 약해졌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드라마에서 가장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죠. (영화 미스트가 대표적인 예겠죠)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럴 만한 다른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으니 중반부를 지나서는 '아, 이제 괴물만 계속 나와서 놀래키는 게 전부겠구나' 하는 감각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런 면에서 아까 말한 대로 조연들을 조금 더 다양하게 등장시키거나 약간의 서사를 더 끌어갔으면 어땠을까 싶었네요.
종합적으로 저에게는 이 영화의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상영 시간이 가장 큰 단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재밌긴 하지만 배부르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나름대로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장면도 많았습니다.
스토리도 아주 직선적이고 단순하고요.
후반부의 액션과 진행도 결말을 향해서 서둘러 가는 듯한, 좀 단조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이렇게 리뷰를 마칩니다.
오랜만에 호러영화를 보고 싶다. 젊은 감각의 레지던트 이블을 보고 싶다면 볼 만한 영화입니다.
가볍고 색다른 B급 감성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역시나 만족스러울 겁니다.
반면에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혹은 대단한 비밀이 밝혀지고 흑막이 드러나는 그런 종류의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이 영화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른 영화와 비교하자면 예전에 반짝 흥행했던 [캐빈 인 더 우즈]와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캐빈 인 더 우즈가 재밌었다! 하면 추천이고.
별로였다! 하면 굳이 영화관에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원작 게임의 캐릭터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원작 게임 팬을 위한 이스터에그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번외로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에 본 영화 [호프]를 많이 떠올렸습니다.
뭔가 호프의 할리우드판 같은 느낌까지 들었달까요 ㅎㅎ
내용이 비슷한 건 아닙니다만, 몇 가지 특징이 유사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두 영화 모두
액션+크리처+호러의 조합이고.
서스펜스와 액션이 잘 버무려져 있고.
초반부가 가장 재밌고.
끊임없이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지만, 모든 유머가 먹히는 건 아니고.
주인공이 크리처에 비해 무능력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는 이야기고.
욕설이 정말 많이 나오고. (호프에서 ㅅㅂ이 백 번 넘게 반복된 것처럼, 레지던트 이블의 브라이언은 F**k을 아예 입에 달고 삽니다 ㅎㅎ)
속편을 향해 가는 결말까지.
많은 지점에서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달까요.
그런 면에서 돌이켜보면 [호프]가 얼마나 혜자 영화였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레지던트 이블보다 적은 제작비로 무려 2시간 반이 넘게 수많은 액션을 때려놓고 유머와 서스펜스까지.
상대적으로 짧아서 아쉬웠던 레지던트 이블보다 저는 호프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어지네요 ㅎㅎ
(제 생각과는 별개로 앞으로 호프의 미국 내 흥행은 조금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레지던트 이블과 관객층이 겹칠 테니 점유율이 빠르게 떨어질 것 같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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